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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주정착회고록

#4.집을 구하다.

2013년 2월9일

설 전날이자 상추가 태어난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.

우리가족은 제주에서 살 집을 구하기 위해서 제주로 내려왔다.

놀러 온 제주와 살기위해 내려온 제주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.

막막함. 막막함.그리고 막막함.

2박3일의 일정내내 나를 짖누르던 느낌.

나중에 안 일이지만, 제주에는 신구간이라고 부르는 기간이 있다.

음력 정월 초순경을 전후하여 집안의 신들이 천상으로 올라가 비어 있는 기간으로,

대한() 후 5일에서 입춘() 전 3일 사이로 보통 일주일 정도다.

제주도 사람들은 이 기간에 이사나 집수리등을 한다고 한다.

우리가 내려온 시점은 이미 신구간이 끝난 직후라 집구하기가 쉽지 않은 시기였던 것이다.

 

의류와 용품을 거래하셨던사장님에게 전화를 했다.

제주에서 유일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.

고사장님은 고맙게도 지역정보지인 제주오일장신문도 구해가지고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.

그리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빈집을 하나 소개도 해주셨다.

애월읍 광령리에 위치한 집이었는데, 1층은 주인어르신이 혼자 기거하시고

2층은 비어있는 상태였다.

집 상태는 좋지 않았다. 사람이 살지 않은지 꽤 된것 같은 상태였다.

아내와 난 곧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다른 집들을 좀 더 알아보고 전화를 드리겠다고 하고

그 집을 나왔다.

 

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내일 돌아 볼 집들을 정리하면서 걱정스런 밤을 보냈다.

그리고 조촐하게 우리 상추의 100일을 축하했다.

2박3일동안 집을 구해 보겠다고 내려온 무모한 가족의 사진이다. 에휴~~

 

다음날, 어음리해변 근처의 집을 찾아갔다. 화목난로도 있고 공간도 넓은 집이었다. 집주인은 우리 말고도 집을보고 간 사람이 있다고 했다.

 

책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집이 괜찮으면 무조건 계약부터하라고 했다.

잠시 고민하는 사이 누군가가 먼저 계약을 하기 때문이란다.

그 정도로 제주도로 귀농귀촌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였다.

 

2%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이번에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 집을본후 연락하겠다고 했다.

 

대학교를 재수할 때는 그렇게 대학생들만 보면 부럽더니만, 이번에는 허물어질 것 같은 집이라도 그곳에 살고 있을 누군가들이 그렇게 부러웠다.

남원과 성산까지 돌고나니 벌써 어둑어둑해진다.

숙소가 있는 애월까지 달리는데, 설날이라 그런지 밥집들도 다 문을 열지않아서

저녁을 해결하는것도 쉽지 않았다.

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도로를 배고픈채로 달리자니 참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.

그래서인지 난 지금도 저녁 어스름질 무렵에는 운전하기가 너무 싫다.

집 구하던 그때의 불안하고 막막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.

숙소로 가는길에 화목난로가 있던 어음리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는데, 이미 계약되었다고 했다.

내일은 올라가야 하는데, 집은 아직 구하지 못하고 참 답답할 노릇이다.

그래서 아내와 고민끝에 고사장님이 소개해준 첫번째 집에서 살아보기로 했다.

 

다음날 오전 광령리 집을 찾아가 집주인을 만났다.

도배와 장판은 입주전에 해주신다고 하셨다.

보증금 100만원,연세 200만원으로 우리는 제주에서 집을 구할 수 있었다. 

 

- 제주의 첫번째 집 (애월읍 광령리) 우리는 2층을 사용했다.